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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02 속회지도자 자료
2025-10-16 15:35:05
신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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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첫번째 주 그룹큐티나눔

 

모든 이가 함께한 건축

 

에스라 1:1-11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찬송 359, 401)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막막한 현실을 마주할 때면 과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에스라서는 절망적인 포로기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그 시대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일하시는지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일을 이루십니다. 혼자서 이루실 수 있지만,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품은 이들을 통해 이루십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바사 왕 고레스가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도록 조서를 내립니다(1-4).

1) 고레스가 유다 백성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령을 내린 이유는 무엇입니까?(1)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기 때문이다.

에스라서는 고레스 원년(주전 538)에 바벨론에서 귀환한 사건을 예레미야 선지자가 선포했던 예언의 성취로 이해한다. 예레미야는 70년 동안 바벨론을 섬긴 이후에 돌아올 것이라 선포했다(25:11, 29:10). 에스라서는 하나님께서 이방의 왕인 고레스를 감동하게 해 약속의 시간에 유다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신 사건임을 주목한다. 이처럼 에스라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넘어 세상 제국의 왕을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이 민족을 초월함을 보여 준다.

 

2) 고레스왕은 유다 백성의 주변에 살던 사람들에게 무엇을 명령합니까?(4)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유다 백성을 도와주고, 그 외에도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드리도록 했다.

고레스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지 않고 자신이 살던 곳 어디든지 남으려는 유다 백성들에게 귀환하려는 동족을 후원해야 함을 명시한다. 아울러 성전 건축을 위한 자발적인 예물도 허용했다. 예루살렘에 귀환한 사람에게만 재원 마련의 의무가 지워진 것이 아니다. 성전 건축을 위한 재원은 이처럼 귀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을 통해 이뤄졌다.

 

나눔 1 고레스가 유대인을 고향으로 돌려보낼 거라고,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다시 짓도록 도울 거라고 어느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방법이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일하신 것을 경험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백성이 성전 건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성전 기물이 반환됩니다(5-11).

1) 고레스가 조서를 내리자 유다 백성은 어떻게 반응합니까?(5)

족장들,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마음에 감동을 받은 백성이 다 일어나 귀환을 준비했다.

고레스의 조서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유다 백성 중에 귀환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구절은 특별히 족장들,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을 주목한다. 지도자 계층의 사람들이 누구보다 먼저 귀환에 참여했다. 여기에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함께한다. 우리는 4절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지 않은 유다 백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귀환을 환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의 지도자들 상당수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일과 성전을 건축하는 문제를 더욱 중요하게 여겼던 듯하다.

 

2) 고레스가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준 것은 무엇입니까?(7-8)

느부갓네살이 약탈해 간 여호와의 성전 그릇

고레스는 과거 느부갓네살이 남유다를 멸망시킬 때 성전에서 전리품으로 가져왔던 성전 그릇들을 유다 총독을 통해 앞으로 세워질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려보낸다. 성전 그릇을 비롯한 기물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여호와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을 암시한다. 더 이상 바벨론 신이 패배한 신에게서 약탈한 전리품이 아니다. 이제는 마땅히 있어야 할 곳으로 당당하게 돌아간다.

 

3) 세스바살이 돌려받은 성전 그릇은 모두 몇 개입니까? (11)

오천사백 개

오천사백 개의 성전 그릇이 있었다는 증언은 9-10절에 나오는 기물들 외에도 더 많은 기물이 있었음을 뜻한다. 유다 총독 세스바살은 창고지기 미드르닷에게 여호와의 성전에서 약탈했던 기물들을 모두 돌려받는다.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양이다. 이 성전 기물들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세워질 성전에 이 기물들은 예전과 같이 여호와를 위한 제사에서 사용될 것이다.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감동이 있다. 하나님께서 바사 왕 고레스를 감당시키셨고,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셨다.

 

나눔 2 하나님 나라의 재건을 꿈꾸며 안정된 정착지를 떠나 폐허가 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로 결단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전진을 위해 떠나거나 버릴 것은 무엇이고, 참여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나눔 3 하나님은 고레스를 비롯한 이방 사람들까지 성전 재건을 위해 힘을 보태게 하셨습니다. 신앙이 없더라도 하나님 나라에 호의적이고 협조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 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_ 나의 안정과 편안보다 하나님 나라의 진전을 위해 힘쓰며 살게 하소서.

공동체 _ 하나님이 보내 주시는 다양한 사람과 협력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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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14 속회지도자 자료 2025-12-10 신내교회 251214 속회지도자 자료.pdf 12월 두번째 주 그룹큐티나눔 나를 지으신 하나님 시편 139:13-24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아 하나님의 은혜로(찬송 310장, 구 410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사람들은 자신을 알기 위해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 여행 끝에서 고독과 허무를 직면합니다. 이는 인간 내면의 마음 상태를 잘 분석했지만,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지를 살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가장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시인이 자기 몸을 지으신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며 찬양합니다(13-18절). 1) 시인이 자기 몸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13-14절) 자기 몸을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심히 놀랍기 때문이다. 시인이 자신의 태어남을 두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건 단지 인체 신비에 감탄하는 게 아니다. 말씀의 본질은 시인이 모태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그를 아셨다는 것이다. 시인이 말할 수 없는 고통 중에서도, 외롭고 고독한 나날 속에서도 고난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별하여 부르셨다(참조. 출 8:22; 시 4:3).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언약 백성이 된 사실에 기뻐하며 찬양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묵상할 때 비로소 찬양은 시작된다. 2) 시인의 형체가 하나님 앞에 숨겨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15-16절) 하나님이 시인의 몸을 은밀한 곳(땅)에서 만드셨고, 시인의 ‘몸의 형질’이 형성되기 전에 이미 그를 보셨으며, 시인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의 인생을 주의 책에 다 기록하셨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기 몸이 모태에서 조성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먼저 아셨다고 고백한다. 즉 시인은 생물학적으로만 태어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출생했음을 고백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고 육체적 출생이 그다음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 선택받은 존재이기에, 도피나 은둔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눈을 피해 살 수는 없다. 이미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때론 두려움이 되기도 하지만 위로가 되기도 한다.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서는 걸 두려워하지만, 치열하게 말씀을 붙들며 사는 사람은 늘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며 산다. 3) 시인이 밤새 ‘하나님의 생각’을 묵상하면서 감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17-18절) 주의 생각이 너무 보배롭고 많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 땅에서 짧은 인생을 살다 가지만, 하나님은 인류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일하고 계신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측량할 수 없이 깊고 풍부하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게 없다. 한 사람만이 아니라 온 인류를 하나님께서 섬세하게 돌보신다. 시인은 이런 하나님의 무한한 뜻과 계획에 감탄하며 찬양한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사가 하나님과 상관없다는 사고는 무신론적 인본주의 세계관이다. 성경적 기독교 세계관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역사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 성도는 이 사실을 인정하며 자신의 짧은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무한한 생각에 기대어 살아야 한다. 나눔 1 시인은 자기 몸을 만드신 하나님이 자신(시인)을 가장 잘 아신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나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나를 만드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성경 묵상을 통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알아 가는지 나눠 봅시다. 나눔 2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인간의 좁은 생각에 갇혀 살지 않고, 하나님의 넓고 깊은 생각 안으로 들어갑니다. 요즘 내 삶에서 하나님의 뜻이 신묘막측하다고 느껴질 때는 언제인지 나눠 봅시다. 2. 시인은 악인과 거리를 두고 하나님을 가까이합니다(19-24절). 1) 시인이 악인을 미워하며 그들과 사귀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19-22절)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은 반드시 하나님께 심판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편 1편에서 행복한 사람의 태도가 묘사되어 있다. 즉 ‘복 있는 사람’(의인)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의인의 공동체와 더불어 말씀을 묵상하며 산다. ‘복 있는 사람’(의인)의 대표적인 특징이 악인의 모임에 함께하지 않는 거다.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종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시인이 악인의 행위를 따른다면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실 때 시인도 함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시인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모든 악의 세력을 미워하며 대적하겠다고 말한다. 2) 시인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무엇을 호소합니까? (23-24절) “하나님, 저를 시험하여 제 마음을 살펴 주소서. 제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는지 점검해 주시고 바른길로 인도하소서.” 시인은 교만하게 자기 의를 자랑하며,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는지 살펴보십시오”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시인이 하나님께서 자기 마음까지 들여다보시기를 간구하는 건 시인이 그만큼 악한 일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시편 1:6의 ‘의인들의 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할 것이라’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시인의 마음까지 헤아리며 시인이 악한 일에 빠져들지 않도록 말씀으로 인도해 주시길 간구한 것이다. 시인은 섬세한 ‘하나님의 인도’를 간구하고 있다. 성도가 날마다 성경을 묵상하는 이유는 말씀으로 늘 자신을 성찰하며 하나님의 선한 인도를 받기 위함이다. 나눔 3 시인은 하나님의 원수를 자기 원수로 여깁니다. 이는 시인이 악인의 편에 서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편에 서겠다는 자세를 분명히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지 않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기울입니까?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 내 마음을 엽니다. 나를 살펴 주소서. 공동체 _ 우리 공동체가 악을 편들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하소서. 251207 속회지도자 자료 2025-12-03 신내교회 251207 속회지도자 자료.pdf 12월 첫번째 주 그룹큐티나눔 거룩한 약속 느헤미야 10:1-39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찬송 546장, 구 399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유다 백성은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후에 공동체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율법을 삶 속에서 실천하기로 다짐합니다. 특히 성전 제사 시스템을 복구하기 위해 각자 해야 할 일을 살피고 봉헌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합니다. 온 구성원이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약속을 맺고, 그 약속에 걸맞게 살려고 노력할 때 그 공동체는 온전히 회복될 수 있습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지도자들과 백성 전체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기로 맹세합니다(1-31절). 1) 어떤 사람들이 언약에 서명합니까?(1, 8-9, 14절) 총독, 제사장, 레위 사람, 백성의 우두머리(지도자) 포로지에서 돌아온 84명의 명단이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84명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다. 즉 이들은 유다 공동체 전체를 대표한다. 그래서 84명의 서명은 단지 개인들의 다짐이 아니라 유다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가 된 것은 국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말씀에 대한 불순종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포로 귀환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언약을 갱신하는 것이다. 이제 다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겠다는 언약 갱신이 있어야 비로소 하나님 백성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 2) 백성이 저주받을 것까지 각오하며 맹세한 것은 무엇입니까?(28-29절)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행하겠다. 신명기 29:12-14에 의하면 여호와의 언약에 참여하는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해야 한다. 그런데 출애굽 때에 하나님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언약대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신 29:13). 언약 체결은 기본적으로 상호 간 ‘맹세’(히, 세부아)를 전제로 한다. 하나님은 백성을 보호하기로, 백성은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맹세한다. ‘출애굽 백성’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마치고 세겜 땅 그리심산과 에발산에 서서 신명기 말씀에 따라 ‘축복과 저주’의 맹세를 한다(참조. 신 11:29; 수 8:33). 포로 귀환 백성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겠다고 맹세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 맹세는 단순한 요식 행위가 아니라 목숨을 건 신앙 고백이다. 3) 이스라엘 백성이 삶 속에서 꼭 지키겠다고 약속한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30-31절) ① 이방인과 통혼 금지 ② 안식일 상거래 금지 ③ 안식년 경작 금지, 빚 탕감 포로 귀한 백성에게 ‘이방인과의 통혼 금지’ 문제는 매우 현실적인 사회 문제였다(참조. 스 9-10장). 이방인과 통혼하지 말라는 건 선민의식을 가지고 이방인을 차별하라는 게 아니다. 이 규례의 핵심은 이방의 우상숭배 문화를 받아들이지 말라는 거다.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간 주된 이유가 우상숭배 행위였기에 다시는 옛 생활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이다. 안식일과 안식년 규례는 땅의 회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스라엘의 범죄로 땅이 부정해졌다. 그래서 땅이 이스라엘 백성을 토해 낸 것이다(참조. 레 18:24-28).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상태로 70년을 보내는 동안 땅도 안식을 누리며 정결해졌다(대하 36:20-21). 안식일 규례는 출애굽 백성이 애굽의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되어 지킨 절기다(참조. 신 5:12-15). 그러므로 포로 귀환 백성이 안식일, 안식년 규례를 철저히 지키는 건 구원받은 ‘자유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나눔 1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백성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음으로써 언약 공동체의 정체성을 회복합니다. 공동체 구성원이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 할 때 그 공동체의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언약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유지하고 발현하는 방법을 이야기해 봅시다. 2. 온 백성이 하나가 되어 성전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32-39절). 1) 성전 제사를 위해 백성이 드리기로 한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32-34절) ① 진설병과 각종 제사에 필요한 제물, 성물을 위해 매년 드리는 1/3세겔 ② 제단의 땔감으로 쓸 나무 성전 제사는 백성의 헌물(1/3 세겔, 땔감 나무 등) 없이 유지될 수 없다. 즉 백성의 헌물은 공동체의 ‘예배 회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배지에서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성전 재건’이었으며, 성전이 재건된 이후에 가장 많이 신경 쓴 것이 바로 성전 제사 복구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교회가 가장 깊이 신경 써야 할 일은 예배의 회복이다. 2) 백성이 성전에 바치기로 약속한 것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입니까?(35-37절) ‘처음 것’(첫 열매, 맏아들, 가축의 첫 새끼, 첫 곡식) ‘처음 것’은 ‘모든 것’(사람, 생축, 곡식 등)의 ‘대표’다. 그래서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는 모든 사람, 모든 생축, 모든 곡식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에 ‘장자’(처음 것)를 치신 재앙은 불순종한 백성에 대한 심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한 백성은 온전히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언약 백성이 되어 말씀의 통치를 받겠다는 의미다. 3) 성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십일조 제도는 어떻게 운영됩니까?(37b-39절, 참조. 민 18:25-32) 백성은 산물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에게 주고, 레위 사람은 받은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제사장에게 주어야 한다. 백성이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성전 제사’ 제도의 근간이 흔들린다. 백성이 낸 십일조를 통해 레위인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레위인은 다시 그들의 십일조를 제사장에게 바침으로써 제사장이 제사 업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결국 성전 제사는 백성의 적극적 헌신과 참여 없이 유지될 수 없다. 나눔 2 백성은 성전 제사를 위해 봉헌하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성전 예배가 살아나야 백성의 삶도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예배를 위해 지금 내가 헌신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나눔 3 ‘처음 것’과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모든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나머지 삶도 주 앞에 거룩한 봉헌물이 되게 하겠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나는 어떤 자세로 헌금 생활을 하고 있는지 나눠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예배 회복을 위해 내가 가진 은사와 재능을 아낌없이 드리길 원합니다. 공동체 _ 온 교우가 한마음이 되어 말씀에 반응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251130 속회지도자 자료 2025-11-26 신내교회 251130 속회지도자 자료.pdf 11월 다섯번째 주 그룹큐티나눔 말씀으로 삶을 바꾸는 시간 느헤미야 8:1-18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찬송 412장, 구 469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우리는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생각과 감정,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콘텐츠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소리 중 무엇이 우리 삶을 형성하게 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지표로 선택했습니다. 수문 앞 광장에 모인 백성은 에스라가 낭독하는 율법책 앞에서 전심으로 반응하며 삶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말씀이 그들의 마음과 삶을 새롭게 했습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에스라가 수문 앞 광장에서 백성에게 율법책을 읽어 줍니다(1-8절). 1) 수문 앞 광장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이 에스라에게 요청한 것은 무엇입니까?(1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요청했다. 느헤미야 6장에서 성벽 공사가 끝났고, 8:1에 이르러서야 백성이 살 집까지 완전히 마련되었다. 일곱째 달은 전통적으로 가을 절기가 있는 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단락에서 백성들이 이러한 가을 절기를 구체적으로 알고 지키려 했던 것은 아니다. 이 점은 14-18절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이 무슨 이유로 이렇게 수문 앞 광장에 모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집까지 마련한 것을 감사하고 감격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안전한 성벽과 집이 있다. 외적인 보호 장치가 마련되었다. 이제 추가되어야 할 것은 내부적인 보호 장치다. 백성들은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말해 달라 한다. 2) 에스라가 율법책을 펴고 하나님을 송축할 때, 백성은 어떻게 반응합니까?(5-6절) 일어서서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읽기 전에 먼저 송축의 말을 한다. ‘송축’이란, 기쁜 일을 기리고 축하하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예루살렘 성벽과 집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선언이다. 이에 백성들은 ‘아멘, 아멘’으로 화답한다. 3) 에스라가 율법책을 낭독할 때, 레위인들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7-8절)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했다. 에스라는 송축 후에 율법책을 읽는다(8절). 고대 시대에는 보통 사람들이 문서를 소유하거나 읽을 수 없었다. 따라서 누군가는 낭독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대부분 사람은 들은 내용을 기억하려 한다. 이 중간 과정을 돕는 것이 레위인의 역할이다. 에스라가 들려 준 율법의 내용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돕는 역할이다(7절). 나눔 1 느헤미야 시대의 백성이 학사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져오도록 간절히 요청하고 그 말씀에 전심으로 반응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사모하고 귀하게 여긴 때가 언제입니까? 나의 생각과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던 말씀을 나눠 봅시다. 2.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에 따라 초막절을 지킵니다(9-18절). 1) 율법의 말씀을 듣고 우는 백성을 향해 느헤미야가 한 말은 무엇입니까?(9-10절) ① 10a절: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② 10b절: “이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에스라와 레위인들의 도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그동안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음을 뉘우치고 운다. 그러나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율법책을 읽은 ‘오늘’이 일곱째 달에 있는 가을 절기에 해당하는 것을 알았다. 슬픔의 절기가 아닌 기쁨의 절기이니 백성들이 울음을 그치도록 하고, 서로 음식을 제공하고 기뻐하자고 말한다. 2) 사람들이 율법책에서 발견한 내용은 무엇입니까?(14절)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내리신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하는 명령이다.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할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조차 율법책을 읽은 이날이 거룩한 성일인 것은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자연스럽게 에스라에게 묻는다. 일곱째 달에 있는 이 절기는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에서 생활하던 때를 기억하기 위해 초막(텐트)에서 지내는 절기, 즉 초막절이다. 백성들은 율법책의 규정에 맞춰 나뭇가지로 초막을 만든다. 3) 초막절을 지키는 동안 에스라와 이스라엘 자손은 어떻게 했습니까?(18절) ① 에스라: 첫날부터 끝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했다. ② 이스라엘 자손: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다. 에스라는 초막절 기간에 백성 앞에서 율법책을 읽는다. 비록 본문에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레위인들은 백성들에게 율법책의 내용을 가르치고 기억하도록 도왔을 것이다. 화려한 퍼레이드가 중심이 된 절기가 아니다. 그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은 말씀이 중심이 되고, 근원으로 돌아가는 절기를 보내며 말씀으로 삶을 바꾸는 시간을 보낸다. 나눔 2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의 말씀을 듣고 슬픔으로 울었으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다’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슬픔과 죄책감을 지나,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기뻐함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은 경험을 이야기해 봅시다. 나눔 3 이스라엘 자손은 수문 앞 광장에서 말씀을 듣고 깨달은 대로 초막절을 지키며 크게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의 삶이 말씀으로 새로워졌습니다. 말씀이 새롭게 형성해 준 삶의 모습이나 공동체의 문화를 이야기해 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말씀을 향한 갈급함과 사모하는 마음이 내 안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공동체 _ 말씀으로 공동체의 비전을 다시 세우는 기쁨과 부흥을 경험하게 하소서. 251123 속회지도자 자료 2025-11-19 신내교회 251123 속회지도자 자료.pdf 11월 네번째 주 그룹큐티나눔 좋은 일을 행하는 손들 느헤미야 2:1-20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주 안에 있는 나에게(찬송 370장, 구 455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위대한 변화는 한 사람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많은 ‘좋은 손들’이 함께 모일 때 비로소 완성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방치되었던 예루살렘 성벽도 그랬습니다.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로 시작된 성벽 재건의 계획은 지도자의 용기와 백성의 헌신, 그리고 예상치 못한 지원이 조화를 이루며 완성되어 갑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왕에게 예루살렘 성을 건축할 수 있도록 요청합니다(1-8절). 1) 아닥사스다왕 앞에서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3절) 느헤미야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기 때문이다. 느헤미야가 전해 들은 예루살렘에 대한 소문은 140년 전에 있었던 바벨론에 의한 침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에스라 4장에 나오는 사건과 같이 성전 건축을 방해하던, 좀 더 시간상으로 가까운 사건들과 더 연관 있을 것이다. 이렇듯 느헤미야는 고향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멀리 떨어진 수산 궁에서 시간의 간극 속에서 듣다 보니 더 마음이 괴로웠을 것이다. 2)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왕이 자신의 요청을 허락한 일을 무엇의 결과라고 고백합니까?(8절)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했다.” 아닥사스다 왕과 느헤미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왕후도 옆에서 말을 거들어 주다 보니 느헤미야가 원하던 예루살렘 성읍을 건축하려는 일이 수월하게 이뤄졌다. 예루살렘까지 가는 통행증과 건축을 위한 재료 준비까지 왕에게 허락받을 수 있었다. 느헤미야는 이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손이 자신 머리 위에 있었다고 여긴다. 이는 이전에 드린 기도에서 비롯된 것이다(1:10-11). 하나님의 강한 손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셨던 것처럼, 이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붙잡고 일하셨다는 고백이다. 나눔 1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왕에게 용기를 내어 도움을 요청하고 왕의 선한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어떤 중요한 일을 위해 용기를 내어 도움을 요청하거나 어려운 결정을 내렸을 때, 예상치 못하게 긍정적인 응답이나 상황이 열리는 일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2.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시찰하고 백성과 함께 성벽 재건 공사를 시작합니다(9-20절). 1) 밤에 예루살렘을 둘러본 느헤미야가 확인한 것은 무엇입니까?(13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이 불탔음을 확인했다. 느헤미야는 자신을 염탐할지도 모를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에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을 살폈다. 소문으로 들었던 것(1:3)과 같이 성벽은 무너져 있었고, 성문은 불타 있었다.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비로소 체감하였다. 2)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들려주고 왕의 말을 전하며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자고 하자, 백성은 어떻게 반응합니까?(18절)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성벽 재건)을 하려 했다. 느헤미야는 성벽과 성문을 살펴본 이후 동족을 불러 모아 자기의 뜻을 전달한다. 자고로 성벽과 성문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는 능력의 시금석이다. 그런 성벽과 성문이 없다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어떤 무엇으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지 못하게 만든 것은 이스라엘에게 능욕과 수치다. 느헤미야는 능욕과 수치를 지금껏 받아온 이들에게 ‘함께 예루살렘 성을 다시 건축하자’고, ‘그동안 받아 온 수치를 없애 버리자’라고 이야기한다. 이에 모든 이들이 동참한다. 3) 성벽 재건 사업을 업신여기는 호론 사람 산발랏, 암몬 사람 도비야, 아라비아 사람 게셈에게 느헤미야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20절)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산발랏과 도비야 그리고 게셈은 당시 유다 지역(당시 행정구역)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성문을 다시 설치하는 일을 페르시아 왕에 대한 반역 행위로 규정한다. 하지만 느헤미야가 왕에게 약속을 받고 온 이상 이들의 협박은 무의미하다. 이들의 목적은 왕의 충신이 되는 것보다 자신들의 힘과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데 있어 보인다. 느헤미야는 이들을 향해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완성하리라 다짐하며,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어떤 힘도 행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좋은 지도자가 기업과 권리 그리고 기억을 누리게 될 것이다. 나눔 2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와 용기 그리고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합쳐져 ‘좋은 일을 행하는 손들’이 일어납니다. 우리 주변에 무너지고 황폐해진 곳들을 보며, 어떻게 하면 우리 손이 ‘좋은 일을 행하는 손들’이 될 수 있을지 이야기해 봅시다. 나눔 3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비웃는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힌 것처럼, 어떤 ‘좋은 일’을 행하려고 할 때, 예상치 못한 반대나 조롱, 혹은 무관심과 같은 어려움에 부딪힌 경험이 있습니까? 그때 어떤 마음이 들고, 그 상황을 어떻게 이겨 내려고 노력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제 안에 주님의 선한 뜻을 이루려는 열정을 주시고 ‘좋은 일을 행하는 손’으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공동체 _ 우리 공동체가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위해 모든 손을 모아 담대히 나아가게 하옵소서. 251116 속회지도자 자료 2025-11-12 신내교회 251116 속회지도자 자료.pdf 11월 세번째 주 그룹큐티나눔 기막히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에스라 9:1-8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나 주의 도움 받고자(찬송 214장, 구 349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이해할 수 없는 죄악의 현실과 마주할 때 깊은 절망과 비탄에 빠지곤 합니다. 죄에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다시 죄 아래 갇힌 모습을 발견할 때 좌절을 겪기도 합니다. 9장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다시금 소망을 꿈꾸던 이스라엘 백성이 또다시 죄악에 깊이 빠져든 상황에서 에스라가 겪은 ‘기막히고 답답한’ 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그러한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며 작은 소망의 끈을 붙잡는 에스라의 자세를 눈여겨봅시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에스라가 백성의 죄로 인해 탄식합니다(1-4절). 1)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 어떤 죄를 지었습니까?(1-2절) 이 땅 백성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즉 이방 민족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았다. 예루살렘으로 온 에스라는 거룩한 자손이라 자청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지방 여러 민족의 여인들과 결혼하게 된 것을 알게 된다. 구약성경이 이방인과의 결혼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에스라서는 이것이 중요한 ‘죄’가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특별히 방백과 고관들이 앞장서서 이방 여인과 결혼하였다는 것은 심각한 ‘죄’일 수밖에 없다. 2) 이 소식을 들은 에스라는 어떻게 반응합니까?(3절)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았다. 에스라가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었다는 것은 이방 여인과 결혼한 이스라엘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음을 보여 준다. 에스라의 행동은 애통함을 넘어 진노를 표현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저녁 제사를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눔 1 살면서 어떤 문제나 소식을 듣고 에스라처럼 ‘기막히고 답답한’ 마음에 압도되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그 상황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지 않았습니까?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2. 에스라가 공동체의 죄를 자백합니다(5-8절). 1) 에스라는 얼굴이 부끄럽고 뜨거워진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합니까?(6절)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쳤습니다.” 에스라가 저녁 제사를 드릴 때까지 앉아서 기막혀하고 있을 때, 에스라 주변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귀환 공동체 안에서 율법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고 여겼던 사람들이다. 에스라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대표한다. 비록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온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그는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죄지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죄를 고백한다. 2) 하나님은 ‘죄가 심한’ 유다 백성과 왕들과 제사장들에게 어떤 일을 시행하셨습니까?(7절) 여러 나라 왕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셨다. 에스라는 현재 이스라엘만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는 ‘조상들 때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다’고 고백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조상들의 죄는 현재 이스라엘의 죄이기도 하다. 모든 이스라엘이 하나로 뭉쳐져 있고 뗄 수 없는 관계다. 조상들의 죄로 인해 나라는 망했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왔지만, 그 모든 수치는 자신들도 당했음을 기억한다. 따라서 죄라는 것은 누구 한 사람의 잘못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3) 에스라는 현재 유다 백성의 상태를 어떻게 해석합니까?(8절) 하나님이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유다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여긴다. 그는 이스라엘의 상황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저 ‘잠시 동안’, ‘얼마를’ 남기셨을 뿐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성소 안의 못과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신에게 단단히 고정하셨다고 여기기도 한다. 비록 이스라엘의 수가 많지는 않으나, 분명 하나님께서 단단히 붙잡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다만 이스라엘의 죄 문제가 이 믿음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그래서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동체를 연약한 상태로 묘사한다. 나눔 2 에스라는 유다 백성이 자신들을 파멸로 몰아간 죄에 또다시 빠지는 것을 보며, 기막히고 답답했습니다. 그 죄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반복해서 짓는 죄,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 할 죄는 무엇입니까? 나눔 3 에스라가 백성의 죄악으로 인해 ‘기막히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부르짖은 것처럼, 소망을 품고 기도해야 할 가정과 사회 그리고 공동체의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주의 은혜를 의지하여 기도하며 소망을 갖게 하소서. 공동체 _ 우리 공동체가 죄악과 고통에서 함께 뉘우치며 오직 주의 긍휼하심만을 바라게 하소서. 251109 속회지도자 자료 2025-11-07 신내교회 251109 속회지도자 자료.pdf 11월 첫번째 주 그룹큐티나눔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명령 에스라 5:1-17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나의 갈 길 다 가도록(찬송 384장, 구 434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과거의 약속이나 중요한 명령이 희미해질 때가 있습니다. 시간의 간극과 상황의 변화로 자연스럽게 잊히기도 합니다. 포로 귀환 공동체에게 성전 건축이 그런 일 중 하나였습니다. 공사가 오랫동안 중단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들릴 때 잊힌 부르심이 되살아납니다. 되살아난 사명은 하나님의 도움에 힘입어 멈추지 않고, 방해에도 굴하지 않습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오랫동안 중단된 성전 건축이 재개됩니다(1-2절). 1) 성전 건축을 격려하고 촉구한 선지자들은 누구입니까?(1절)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 고레스에 의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 백성은 성전을 건축하려 했지만,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서 고발당했다. 성전 건축은 중단된다. (참고. 에스라 4:6-23은 성전 건축이 중단된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는 단락이다. 그러나 시대적인 불일치가 존재한다. 어쩌면 에스라서는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일이 에스라서를 읽게 된 당대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 주려는 듯하다) 이렇듯 중단된 성전 건축을 다시금 재개하도록 촉구한 이들이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다. 학개와 스가랴의 메시지는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비롯한 유다 백성들에게 전해진다. 2) 선지자들의 예언에 유다 백성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2절)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그들을 도왔다. 유다 백성에게 성전 건축은 새로운 공동체의 구심점일 뿐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정체성을 알아 가고 만들어 가는 중요한 미션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미션이 억압적인 환경으로 인해 멈췄다. 점차 자신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잊고 살아가던 그때 선지자들이 사람들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결국 유다 백성은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며 자신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가게 된다. 나눔 1 성전 재건의 명령을 잊고 지내던 백성에게 그 명령을 일깨우고 수행하도록 촉구한 것은 학개와 스가랴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잊고 있던 정체성과 사명을 재확인한 경험을 나눠 봅시다. 2. 성전 재건이 또다시 반대에 부딪힙니다(3-17절). 1) 닷드내 총독과 관리들은 유다 장로들에게 무엇을 질문합니까?(9절)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라고 하였느냐?” 닷드내 총독과 관리들은 다리오왕의 명령을 따라 유다 지역을 감찰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 같다. 이들은 유다 백성이 성전 건축을 재개하는 것을 의심했다. 이것이 다리오왕의 명령에 따른 합법적인 것인지, 아니면 불법인지 파악하려고 한다. 2) 유다 장로들이 대답한 내용은 무엇입니까?(11-16절) ① 11-12절: 하나님의 진노로 성전이 파괴된 경위 ② 13-16절: 성전 재건을 명한 고레스의 조서와 성전 그릇을 내준 고레스의 결정 닷드내 총독의 질문에 대하여 유다 장로들은 성전 건축에 대한 다소 동문서답에 가까운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런 유다 장로들의 대답 목적은 성전 건축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데 있다. 고레스의 명령에 따라서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게 된 일련의 사건은 분명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돌보시기 시작했음을 깨닫게 했다. 아울러 솔로몬의 성전이 왜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답변 속에는 새로운 성전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해답이 담겨 있다. 3) 총독과 관리들이 성전 재건 공사를 막지 못한 까닭은 무엇입니까?(5절)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기 때문이다. 우리말 성경은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다’로 번역한다. 이런 표현은 마치 유다 장로들을 연약한 존재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은 ‘하나님의 눈이 유다 장로들 위에 있었다’고 표현한다. 매우 단순하면서도 재밌는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유다 장로들과 함께 계신다’는 의미와 ‘그들을 보호하신다’라는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 연약한 이들을 돌보시는 하나님보다는 싸워 이기려는 이들에게 힘을 주고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더 느껴진다. 나눔 2 반란을 의심하는 총독에게 유다 장로들은 자기들의 신앙과 성전 재건의 정당성을 사실에 근거하여 해명했습니다. 세속의 정치 및 행정 체제 속에 존재하는 교회가 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교회의 사역을 펼쳐야 할지 의논해 봅시다. 나눔 3 총독이 공사를 중단시키지 못한 것은 유다 장로들의 지혜로운 답변 덕이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적적인 사건 없이 상식적이고 평범한 과정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은 경험을 나눠 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하나님의 부르심과 명령이 잊히지 않도록 말씀으로 깨우쳐 주소서. 공동체 _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하며, 세속 기관과 바른 관계 속에서 교회의 사명을 다하게 하소서. 251102 속회지도자 자료 2025-10-16 신내교회 251102 속회지도자 자료.pdf 251102 속회지도자 자료.pdf 11월 첫번째 주 그룹큐티나눔 모든 이가 함께한 건축 에스라 1:1-11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찬송 359장, 구 401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막막한 현실을 마주할 때면 ‘과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에스라서는 절망적인 포로기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그 시대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일하시는지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일을 이루십니다. 혼자서 이루실 수 있지만,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품은 이들을 통해 이루십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바사 왕 고레스가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도록 조서를 내립니다(1-4절). 1) 고레스가 유다 백성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령을 내린 이유는 무엇입니까?(1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기 때문이다. 에스라서는 고레스 원년(주전 538년)에 바벨론에서 귀환한 사건을 예레미야 선지자가 선포했던 예언의 성취로 이해한다. 예레미야는 70년 동안 바벨론을 섬긴 이후에 돌아올 것이라 선포했다(렘 25:11, 29:10). 에스라서는 하나님께서 이방의 왕인 고레스를 감동하게 해 약속의 시간에 유다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신 사건임을 주목한다. 이처럼 에스라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넘어 세상 제국의 왕을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이 민족을 초월함을 보여 준다. 2) 고레스왕은 유다 백성의 주변에 살던 사람들에게 무엇을 명령합니까?(4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유다 백성을 도와주고, 그 외에도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드리도록 했다. 고레스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지 않고 자신이 살던 곳 어디든지 남으려는 유다 백성들에게 귀환하려는 동족을 후원해야 함을 명시한다. 아울러 성전 건축을 위한 자발적인 예물도 허용했다. 예루살렘에 귀환한 사람에게만 재원 마련의 의무가 지워진 것이 아니다. 성전 건축을 위한 재원은 이처럼 귀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을 통해 이뤄졌다. 나눔 1 고레스가 유대인을 고향으로 돌려보낼 거라고,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다시 짓도록 도울 거라고 어느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방법이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일하신 것을 경험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백성이 성전 건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성전 기물이 반환됩니다(5-11절). 1) 고레스가 조서를 내리자 유다 백성은 어떻게 반응합니까?(5절) 족장들,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마음에 감동을 받은 백성이 다 일어나 귀환을 준비했다. 고레스의 조서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유다 백성 중에 귀환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구절은 특별히 족장들,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을 주목한다. 지도자 계층의 사람들이 누구보다 먼저 귀환에 참여했다. 여기에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함께한다. 우리는 4절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지 않은 유다 백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귀환을 환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의 지도자들 상당수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일과 성전을 건축하는 문제를 더욱 중요하게 여겼던 듯하다. 2) 고레스가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준 것은 무엇입니까?(7-8절) 느부갓네살이 약탈해 간 여호와의 성전 그릇 고레스는 과거 느부갓네살이 남유다를 멸망시킬 때 성전에서 전리품으로 가져왔던 성전 그릇들을 유다 총독을 통해 앞으로 세워질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려보낸다. 성전 그릇을 비롯한 기물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여호와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을 암시한다. 더 이상 바벨론 신이 패배한 신에게서 약탈한 전리품이 아니다. 이제는 마땅히 있어야 할 곳으로 당당하게 돌아간다. 3) 세스바살이 돌려받은 성전 그릇은 모두 몇 개입니까? (11절) 오천사백 개 오천사백 개의 성전 그릇이 있었다는 증언은 9-10절에 나오는 기물들 외에도 더 많은 기물이 있었음을 뜻한다. 유다 총독 세스바살은 창고지기 미드르닷에게 여호와의 성전에서 약탈했던 기물들을 모두 돌려받는다.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양이다. 이 성전 기물들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세워질 성전에 이 기물들은 예전과 같이 여호와를 위한 제사에서 사용될 것이다.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감동이 있다. 하나님께서 바사 왕 고레스를 감당시키셨고,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셨다. 나눔 2 하나님 나라의 재건을 꿈꾸며 안정된 정착지를 떠나 폐허가 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로 결단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전진을 위해 떠나거나 버릴 것은 무엇이고, 참여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나눔 3 하나님은 고레스를 비롯한 이방 사람들까지 성전 재건을 위해 힘을 보태게 하셨습니다. 신앙이 없더라도 하나님 나라에 호의적이고 협조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 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나의 안정과 편안보다 하나님 나라의 진전을 위해 힘쓰며 살게 하소서. 공동체 _ 하나님이 보내 주시는 다양한 사람과 협력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게 하소서. 251026 속회지도자 자료 2025-10-15 신내교회 251026 속회지도자 자료.pdf 10월 네번째 주 그룹큐티나눔 유월절을 지키라 역대하 30:1-12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찬송 265장, 구 199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북이스라엘이 망한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의 절기를 제멋대로 왜곡했기 때문입니다(참조. 왕상 12:32-33). 유월절 절기를 무시한 것은 남유다도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이제 북이스라엘이 망한 상태에서 남유다에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히스기야왕이 유월절을 회복시켜, 남유다는 물론 북이스라엘까지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선한 의도를 무시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히스기야가 유다 사회에서 오랫동안 잊힌 절기를 되살립니다(1-5절). 1) 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명령한 것은 무엇입니까?(1절)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히스기야는 유다의 열셋째 왕이며, 25세에 왕이 되어서 29년 동안 다스렸다(주전 715-687년). 그의 재위 기간은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망한 시점(주전 722년) 이후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성전을 정화하고 절기를 회복하며 받게 될 영적인 혜택을 ‘온 이스라엘’ 즉 북왕국 백성에게까지 확장한다. 앗수르에 의해 북왕국이 망하자, 북쪽에 있던 많은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남하했고, 북왕국 백성들은 영적으로 방황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 히스기야는 북왕국의 패망을 남의 일로 방관하지 않고 이를 기회로 남과 북이 하나 되게 하려 했다. 히스기야는 유월절을 갱신함으로써 남과 북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하려 했다. 2) 원래 유월절은 1월 14일인데, 한 달 미뤄 2월에 지킨 이유가 무엇입니까?(2-3절; 참조. 민 9:10-11) 성결하게 준비된 제사장도 부족했고, 백성도 예루살렘에 모이지 못했기에, 좀 더 준비된 상태에서 유월절을 지키게 하려고 민수기 9:10-11에 의하면, 시체를 만져 몸이 부정해진 자나, 먼 여행을 떠난 자는 한 달 미뤄서 2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킬 수 있었다. 히스기야는 이 율법 조항을 근거로 공동체와 상의해서 유월절 절기를 한 달 미룬 것이다. 남과 북의 백성이 초청장을 받고 한자리에 모이려면 시간이 필요했고, 결정적으로 성결한 제사장 수가 부족했기에 히스기야는 준비 기간을 확보하기 위해 유월절을 둘째 달로 조정한 것이다. 이것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자기 멋대로 절기를 8월 15일로 잡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로보암은 율법과 상관없이 자기 멋대로 금송아지 제단을 만들고 제사 절기 날짜를 8월 15일로 정했다(참조. 왕상 12:32). 나눔 1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사회가 오랫동안 지키지 않은 유월절을 다시 회복시킵니다. 이는 단지 민족의 축제 하나를 복원하는 게 아니라 출애굽 역사의 의미를 되살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 즉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신분을 다시 일깨운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회복해야 할 정체성과 유월절 정신은 무엇인지 서로 나눠 봅시다. 2. 유월절을 지키라는 전언을 받은 백성이 다양한 반응을 보입니다(6-12절). 1) 보발꾼들이 전한 왕과 방백들의 편지에 가장 먼저 기록된 내용은 무엇입니까?(6절)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백성에게 돌아오실 것이다. 6절은 북왕국 이스라엘이 이미 앗수르에 의해 패망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히스기야는 북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여호와께 돌아오라”라고 권면한다. 이것은 남쪽 유다의 정치 체제에 편입해 들어오라는 요청이 아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백성은 원래부터 하나인 하나님의 백성이었으니, 이제 앗수르의 침략에 살아남은 자들은 여호와께 돌아와서 보호를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도 그 남은 자들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다. 히스기야는 남과 북의 정치적 통합 이전에 남과 북이 영적으로 다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하나 되길 바라며 유월절 참석 초청 편지를 보냈다. 2) 왕과 방백의 편지에서 백성에게 내린 금지 명령은 무엇입니까?(7절) 여호와께 교만과 불신의 죄를 범한 조상 또는 형제의 본을 따르지 말라. 히스기야는 유월절 제사에 참여하는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유월절 제사에 참여하기 위한 대전제 조건이 ‘회개’다. 북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다시는 조상들과 형제들의 죄를 답습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는 북이스라엘이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버렸기에 그들이 앗수르의 포로가 되었다는 걸 상기시킨 것이다. 히스기야가 유월절을 갱신하는 것은 종교 개혁 운동이다. 남과 북이 다시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 운동이다. 그러므로 유월절에 참여하려는 자는 옛 죄의 습성(우상숭배)을 버려야 한다. 3) 편지를 받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반응이 어떻게 나뉩니까?(10-12절) ① 북이스라엘(10-11절): 대부분 유월절을 지키라는 명령을 무시하였으나, 일부는 겸손하게 듣고 예루살렘으로 갔다. ② 남유다(12절):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한마음으로 준행했다. 히스기야의 유월절 참석 초청장을 받은 백성이 두 갈래로 나뉜다. 한 부류 특히 북이스라엘 대부분 백성은 히스기야의 유월절 초청을 무시한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남유다에 반감 가지는 정도가 아니라, 이전에 북이스라엘이 지은 우상숭배에 대한 반성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일부는 지난 잘못을 반성하며 주께 돌아온 자들이 있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통해 유월절 제사를 온전히 성취하셨다. 그리고 주님은 지금도 유월절(천국 잔치)에 참여하도록 사람들에게 초청장을 보내신다. 주님의 초청을 진중하게 받아 죄를 회개하며 주께 나오는 자는 하늘 백성이 될 것이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초청을 무시하는 자는 하늘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참조. 마 22:14). 나눔 2 죄를 지은 백성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면, 하나님도 그들에게 돌아가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인간의 돌아옴(회개)과 하나님의 돌아오심(은혜)이 만날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돌아가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나눠 봅시다. 나눔 3 북이스라엘 다수가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편지를 무시했지만, 그 말을 듣고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초청할 사람이 있다면 서로 나눠 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많은 사람이 거절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공동체 _ 우리 공동체 안에 무너진 유월절 정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회복하게 하소서. 251019 속회지도자 자료 2025-10-15 신내교회 251019 속회지도자 자료.pdf 10월 세번째 주 그룹큐티나눔 분향의 유혹 역대하 26:1-23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겸손히 주를 섬길 때(찬송 212장, 구 347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웃시야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는 형통의 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교만과 탐욕으로 넘보지 말아야 할 일을 욕심냈을 때는 영광이 아니라 수치를 당하고 맙니다. 이미 충분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데도 더 많은 것을 제 뜻대로 휘두르려 한 교만이 그를 절망으로 몰아갑니다. 교만한 자는 살아서도 죽은 자처럼 수치를 당하고 죽어서도 명예롭지 않은 인물로 영원히 기억됩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웃시야가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 큰 축복을 받아 누립니다(1-15절). 1) 웃시야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하십니까?(5절)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 웃시야는 유다의 열째 왕이다. 역대기에서는 ‘웃시야’라는 이름으로 열왕기에서는 ‘아사랴’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진다. ‘웃시야’는 ‘여호와의 힘’이라는 의미고, ‘아사랴’는 ‘여호와의 도움’이라는 의미다. 역대기가 열왕기에 비해 ‘힘’(권세)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참조. 8절). 웃시야의 아버지는 아마샤며, 할아버지는 요아스다. 웃시야, 아마샤, 요아스 모두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초기에는 평가가 좋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평가가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웃시야의 아버지 아마샤가 북이스라엘과 전쟁에서 포로가 된 때에 웃시야는 남유다의 왕이 된다. 그리고 10년 만에 포로에서 돌아온 아마샤가 이후로도 15년을 생존한다(대하 25:25). 그래서 웃시야는 초기 25년을 아버지 아마샤와 공동 통치한다(주전 792-767년). 그리고 후반부 10년은 나병에 걸려서 아들 요담과 공동 통치한다(주전 750-740년). 그러므로 웃시야의 통치 기간 52년 중에서 오롯이 그가 홀로 통치한 기간은 17년이다. 웃시야가 스가랴 같은 선지자를 가까이 두며 말씀에 순종할 때 그는 형통하였다(5절). 5절에 나온 스가랴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와는 동명이인이다(참조. 대하 24:20-22). 할아버지 요아스는 우상숭배의 죄를 지적하는 선지자 스가랴를 돌로 쳐 죽였고, 손자 웃시야는 또 다른 선지자 스가랴가 살아 있을 동안만 하나님을 찾았다. 2) 하나님이 웃시야에게 주신 복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6-10절) 유다가 대적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이웃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으며, 성문을 건축하고 망대를 세우며 웅덩이를 파서 목축과 농사가 잘되게 했다. 웃시야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는 다방면에서 형통하였다. 웃시야는 블레셋과 싸워 승리했으며, 암몬 사람들은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쳤고, 웃시야의 명성이 애굽 변방까지 미쳤다. 또한 웃시야는 예루살렘 근처에 망대를 세워 방비를 강화했고, 광야에도 망대를 세우고 웅덩이를 파서 가축을 기르고, 산과 밭에 포도원을 만들어 농업을 활성화했다. 웃시야가 말씀에 순종할 때 대외적으로는 적을 이기며 승리하고, 대내적으로는 풍요를 경험했다. 나눔 1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다양한 방식으로 복을 주시며 형통하게 하십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받은 복이 무엇인지 서로 나눠 봅시다. 2. 웃시야의 교만이 웃시야를 망가뜨립니다(16-23절). 1) 제사장도 아닌 웃시야가 성전에서 분향하려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16절) 웃시야가 강성해지자 마음이 교만해졌기 때문이다. 웃시야는 여러 면에서 형통하자 마음에 욕심이 생겨났다. 현재는 정치 최고 지도자인데 종교 분야에서도 최고가 되고 싶은 야욕이 생겼다. 선지자 스가랴가 죽은 이후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오히려 사람들이 자신을 찾으며 숭상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성소에서 직접 분향하려 한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백성에게 보여 주려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가 제사장 이상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이려 한 것이다. 유다에서 자기보다 높은 존재는 없고, 자신은 누구(선지자, 제사장)의 말도 들을 필요가 없는 절대 왕임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웃시야는 형통할 때 자기보다 큰 왕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겸손해야 했다. 2) 제사장의 경고를 무시하고 성전에서 분향하려 한 왕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19절) 웃시야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다. 나병(짜라아트)은 악성 피부병을 의미한다. 백성 중에서 ‘짜라아트’에 걸리면 반드시 진영 밖으로 격리 조치해야 한다(레 13:45, 46).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모세를 비방하고 그 권위에 도전하다가 나병에 걸렸다(민 12:10). 마찬가지로 웃시야 왕은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의 권위를 무시하고 스스로 그 자리를 탐하려다 나병에 걸렸다. 웃시야는 단순히 악성 피부병에 전염된 게 아니라 과욕과 교만으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은 것이다. 3) 웃시야의 시신이 역대 왕들의 묘실에 안치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23절) 나병에 걸려 부정해졌기에 죽어서도 왕의 묘실에 안치될 수 없었다. 나병의 특징은 ‘부정함’에 있다. 나병에서 회복되지 못하면 그는 끝까지 부정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다. 웃시야는 죽을 때까지 나병에서 낫지 못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죄에서 사면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살아서도 부정하여 사람들과 접촉할 수 없었지만, 죽어서도 정결한 조상들의 묘실에 입실할 수 없었다. 자기 주제를 모르고 교만의 죄를 지으면 죽어서도 명예롭지 못하다. 나눔 2 웃시야는 정치적으로 힘이 생기자 교만해져서 제사장의 역할까지 하려 들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한계를 넘어,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하려는 태도입니다. 나를 유혹하는 교만은 무엇이며, 교만의 유혹을 물리치기 위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나눔 3 웃시야는 나병 때문에 살아서도 왕궁에 거할 수 없었고, 죽어서도 왕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교만 때문에 영광의 자리에서 완전히 격리되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잠 16:18). 교만 때문에 낭패를 당한 경험이 있다면 나눠 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형통한 삶을 살게 하소서. 공동체 _ 교만과 탐욕으로 눈이 어두워 영광을 놓치는 선택을 하지 않게 하소서. 251012 속회지도자 자료 2025-10-05 신내교회 251012 속회지도자 자료.pdf 10월 두번째 주 그룹큐티나눔 형통하길 원한다면 역대하 20:20-21:1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우리들이 싸울 것은(찬송 350장, 구 393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여호사밧은 그의 아버지 아사처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여 하나님께 칭찬받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만 의지하며 백성을 말씀으로 인도할 때, 하나님도 그를 도와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산당을 척결하지 않고, 통치 말기에 악한 이스라엘 왕과 교제하기도 합니다. 지도자가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지고 백성이 죄를 범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여호사밧왕은 특별한 방식으로 전투를 수행합니다(20-30절). 1) 여호사밧이 전쟁을 앞둔 백성에게 준 권면과 약속은 무엇입니까?(20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역대하 20:1에 의하면 모압, 암몬, 마온(세일) 자손들이 유다를 공격하고자 나아왔다. 그런데 이때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신탁이 유다 백성에게 전달된다(14절). 신탁의 내용은 이 전쟁은 사람에게 속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대적과 맞서라는 것이다(15-17절). 그러면서 여루엘 들 앞으로 나가서 진을 치라고 명령한다(16절). 이에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이 말씀에 순종하여 드고아 들로 나아간다. 드고아는 여루엘로 나아가기 위해 모인 집결지다. 이곳에서 여호사밧이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신뢰하라. 선지자를 신뢰하라”라고 권면한다. 그러면 “견고히 설 것이며, 형통할 것이다”라고 약속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여호사밧은 큰 전투를 앞두고 선지자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달하고 백성이 그 말씀을 신뢰하며 순종하도록 독려한다. 영적인 지도자가 큰 사역을 앞두고 해야 할 일은 말씀으로 비전을 제시하고 승리의 확신을 고취하는 것이다. 2) 전투 시작 전에도, 후에도 백성이 똑같이 행한 일은 무엇입니까?(21, 28절) 여호와를 찬송하는 일 여호사밧은 선지자 야하시엘이 전해 준 신탁에 따라 전투한다. 야하시엘은 여호사밧과 백성에게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라고 했다(17절). 여호사밧은 이 메시지에 따라 선봉대를 전투부대로 편성하지 않고 거룩한 예복을 입은 찬양대로 꾸렸다. 그리고 찬양대에게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찬양하게 하였다. 그 결과 유다는 승리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여호사밧은 다시 찬양대를 구성해서 성전으로 나아가게 한다. 여호사밧은 전쟁의 시작과 끝을 찬양으로 한다. 이 전투가 ‘사람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쟁’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투한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29-30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는 소식을 이방 나라가 듣고 두려워했다. 그 결과 유다에 평화가 찾아왔다. 22-2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의 대적을 치셨다. 하나님께서 전투에 개입하시자 대적은 자기편끼리 서로 싸우며 살육했다. 유다 백성이 한 일이라고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용기를 내어 대적과 맞서는 것이었다. 대적과 맞서되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린 결과,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승리를 선물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너무 명확하고 능력이 있어서 이방 모든 나라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대적은 감히 다시 유다를 침략하지 못하였고, 결과적으로 유다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나눔 1 여호사밧은 전투 시작 전에 백성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라. 선지자들을 신뢰하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대적을 이길 수 없음을 분명히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선지자를 신뢰한다’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또 어떤 실천인지 나눠 봅시다. 나눔 2 유다 백성은 전투 시작과 끝에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전쟁의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감사하는 자세를 잃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찬양할 때, 하나님이 승리와 평화를 안겨 주신 경험을 나눠 봅시다. 2.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칭찬받는 왕이지만, 몇 가지 오점을 남깁니다(31-37절). 1) 여호사밧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무엇입니까?(32-33절) 산당을 철거하지 않음으로써 백성이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오지 못하게 했다. 여호사밧은 그의 아버지 아사가 행한 것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 하지만 여호사밧의 개혁은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산당 제사를 온전히 척결하지 못한 것이다. 산당 제사의 핵심은 혼합주의다. 여호와도 섬기고 가나안의 신들도 겸하여 섬기는 것이다. 고대 근동의 다신론적 배경에서는 다양한 신을 섬기는 게 죄가 아니라 미덕이며 장려 사항이었다. 여호사밧이 산당 제사를 철저하게 척결하지 못한 결과, 백성은 다시 혼합주의 다신론에 빠져 하나님을 떠났다. 종교개혁은 시종일관 철저해야 한다. 철저하지 못한 개혁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죄의 내성만 키울 뿐이다. 2)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의 공동 사업을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35-37절; 참조. 왕상 22:48) 여호사밧과 아하시야가 다시스와 오빌 간 해상 중개 무역을 위해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건조했지만, 하나님이 그 배를 파선시킴으로써 그들의 계획을 무산시키셨다. 여호사밧 생애에서 큰 잘못 중 하나는 북이스라엘 아합 왕가와 교류한 것이다. 역대하 18:1-3을 보면 여호사밧은 아합 가문과 정략결혼을 통해 인척 관계를 맺었다. 즉 여호사밧은 자신의 아들 여호람을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시켰다. 이것은 나중에 다윗 왕가의 왕자들이 멸족되는 비극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선견자 예후는 여호사밧의 이런 행동에 대해 여호와 보시기에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지적한다(19:2). 그럼에도 여호사밧은 다시 이스라엘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와 연대하여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어 중개 무역을 하려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연합하여 만든 배를 깨뜨리심으로써 불의한 연대를 박살 내신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악한 자와 연대하면 하나님의 ‘진노의 칼’을 피할 수 없다. 나눔 3 여호사밧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옳은 길을 걸었으나, 산당을 척결하지 못하고 불의한 이스라엘 왕과 교제하는 오점을 남겼습니다. 여전히 정리하지 못한 나의 불신앙적인 삶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악과 타협하는 죄를 범치 않게 하시고, 철저히 말씀에 순종하게 하소서. 공동체 _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우리 앞에 놓인 믿음의 길을 걷게 하소서. 251005 속회지도자 자료 2025-10-01 신내교회 251005 속회지도자 자료.pdf 10월 첫번째 주 그룹큐티나눔 우리를 도우소서 역대하 14:2-15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예수는 나의 힘이요(찬송 93장, 구 93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아사왕의 초기 사역(14-15장)과 후기 사역(16장)이 대조됩니다. 그는 통치 초기에 우상을 척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모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사가 하나님을 떠나 아람 왕을 의지하자, 하나님은 그에게서 평화를 앗아가십니다. 아사의 생애에서 가장 형통한 시기는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도움을 구하는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하나님은 정직하고 신실한 아사왕과 동행하며 복을 주십니다(2-7절). 1) 아사가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는 자로 인정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2-5절) 이방 제단과 우상을 없애고, 백성에게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을 찾으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아사가 유다 백성에게 명하여 ‘여호와를 찾고’,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라고 명령한다(4절). ‘여호와(주)를 찾는다’는 표현은 14-15장에 집중적으로 나온다(14:2, 7; 15:4, 12, 15). 16장에서는 이 어구가 딱 한 번 등장하는데, 그마저 부정적으로 사용된다. 16:12에 ‘여호와께 구하지(찾지) 아니하고’라는 어구가 나온다. 14-15장이 아사왕의 초기 사역의 신실함을 강조하는 본문이라면, 16장은 아사왕의 불충한 모습을 폭로하는 본문이다. 아사 왕의 ‘신실’과 ‘불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여호와를 찾느냐’ 여부에 있다. 아사가 여호와를 찾으며 율법에 순종하려 했기에, 자연스럽게 율법에 어긋난 우상숭배 행위를 철폐하려 했던 것이며, 하나님은 그런 아사왕을 의롭다고 칭찬하신 거다. 2) 신실한 아사왕에게 하나님이 주신 복은 무엇입니까? (6-7절) 유다에 평안을 주시고 전쟁이 없게 하시며, 견고한 성읍을 건축하게 하셨다. ‘평안하다’라는 말이 5절에 한 번(샤카트), 6절에 두 번(누아흐, 샤카트), 7절에 한 번(누아흐) 나온다. 히브리어 ‘샤카트’, ‘누아흐’ 모두 분쟁이 없는 상태의 안식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 신실한 아사왕에게 전쟁이 없는 평화와 안식을 선물하신 것이다. 전쟁이 없는 상태에서 아사왕은 국방을 튼튼히 할 수 있었다.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었다. 대적이 쉽게 넘보지 못할 강고한 요새를 구축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신실할 때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대적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참 안식과 평화를 선물하신다. 나눔 1 아사왕은 통치 초기에 하나님 앞에서 신실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신실한 그를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고 평안과 안식을 선물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또한 하나님을 가까이할 때 하나님이 주신 복은 무엇인지 나눠 봅시다. 2. 아사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워 승리합니다(8-15절). 1) 아사(유다)의 군대와 구스 군대의 규모는 각각 얼마나 됩니까?(8-9절) 아사(유다)의 군대는 58만 명이고, 구스의 군대는 100만 명에 병거가 300대다. 아사의 군대는 큰 방패와 창을 잡은 군사가 30만 명, 베냐민 지파 중에 작은 방패와 활을 잡은 자가 28만 명, 도합 58만 명이다. 고대에서 이 정도 군대 규모는 절대 작지 않다. 하지만 구스(에티오피아) 사람 세라가 이끄는 군대 수는 도합 100만 명이며, 병거도 300대나 되었다. 유다 군이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구스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세상에서 절대적인 힘(Power)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힘은 항상 상대적이다. 현재 어떤 힘이 큰 것처럼 보여도 더 큰 힘이 나타나면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자기 힘을 자랑하며 사는 건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성도는 세상에서 자기 힘을 자랑하며 사는 존재가 아니라 절대 힘을 가지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존재다. 2) 아사는 구스 군대와 맞서 싸우러 나가서 무엇을 기도합니까?(11절) 여호와만 의지하여 구스 대군과 맞서 싸우려 하니,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해 달라고 도움을 구했다. 강력한 구스군 앞에 선 아사왕은 위축되지 않았다. 이것은 아사가 속 빈 강정이면서 허장성세를 부리는 게 아니며, 자기 힘을 과도하게 신뢰하며 착각에 빠진 것도 아니다. 아사왕이 엄청난 구스군 앞에서 위축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절대 힘’을 가진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아사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사람이 주님을 이기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아사왕은 이 전투가 ‘사람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쟁’임을 확신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다. 하나님 나라 영적 전투 제일 원리는 자기(세상)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3) 아사의 기도에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십니까?(12-15절) 구스 군대를 치셔서 유다가 압승하고 전리품을 많이 얻게 하셨다. 구스 군대를 공격한 주체는 아사와 유다군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다(12절). 하나님이 구스군을 치시니 그들이 유다 사람들 앞에서 도망쳤다. 그래서 아사와 유다 백성이 구스군을 그랄까지 추격하여 도륙할 수 있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유다 백성은 많은 전리품을 획득했다. 아사왕은 전리품 중에서 소 칠백 마리와 양 칠천 마리로 여호와께 제사를 지냈다(참조. 대하 15:11). 그리고 백성들이 여호와만 찾도록 권면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참된 승리와 평화와 안식을 선물하셨다. 나눔 2 구스의 100만 대군의 공격을 받는 위기 상황에서 아사는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며 간절히 도움을 구했습니다. 내가 겪는 어려움, 내가 드리는 기도는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나눔 3 하나님은 아사의 믿음과 기도에 응답하셔서 유다 군대에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다면 나누고, 응답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어려움 속에서 기도하는 지체를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 앞에서 주님만 믿고 의지하게 하소서. 공동체 _ 우상을 척결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게 하소서. 250928 속회지도자 자료 2025-09-24 신내교회 250928 속회지도자 자료.pdf 9월 네번째 주 그룹큐티나눔 회개에 응답하시는 주의 인자하심 역대하 7:1-22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너희 죄 흉악하나(찬송 255장, 구 187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완성하고서 모든 사람을 불러 성전 낙성식을 시작합니다(5:1). 솔로몬의 긴 기도(6장)가 끝나자마자 하늘에서 불이 성전에 내려 제물들을 불사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기쁘게 받으셨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람들의 찬양과 하나님의 영광 받으심이 조화를 이룹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솔로몬왕과 모든 백성이 성전 낙성식을 행합니다(1-10절). 1)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것을 본 이스라엘 자손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3절)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동일한 표현이 역대기 안에서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가져오던 장면(대상 16:34)과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면서 언약궤를 성전으로 가져오는 장면(대하 5:13) 그리고 성전을 봉헌하는 장면(대하 7:3)에서 이 구절이 반복하여 울려 퍼진다. 어쩌면 역대기는 가장 의미 있다고 여기는 순간에 ‘하나님의 선하심’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무엇인지를 말하려고 한다. 2) 레위 사람들이 연주한 악기가 만들어진 목적은 무엇입니까?(6절) 다윗 왕이 레위 사람들에게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려고 만든 것으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찬송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역대기는 다양한 악기와 악기를 연주하는 수많은 사람의 규모를 통해서 보여 준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문자적으로 거대한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기뻐하신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역대기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규모가 아닌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얼마나 웅장하고 큰지에 대해서 강조한다. 3) 성전 낙성식과 절기가 끝나고 돌아가는 백성의 마음은 어떠합니까?(10절) 여호와께서 다윗과 솔로몬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기뻐하며 즐거워한다. 역대기는 다윗과 함께한 모든 이스라엘, 솔로몬과 함께한 모든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다윗과 솔로몬에게 주신 은혜는 곧 모든 이스라엘에게 주신 은혜다. 모든 사람과 함께 누리는 기쁨이 역대기 안에 가득하다. 나눔 1 성전 낙성식에 모인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노래하고 연주합니다. 성전을 건축한 기쁨이 얼마나 큰지 사람들은 두 주간 계속되는 절기 속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나눠 봅시다. 2.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11-22절). 1) 솔로몬이 지은 건물을 성전으로 삼았다고 하시며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무엇입니까?(14-15절) ① 14절: “내 백성이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② 15절: “이곳(성전)에서 하는 기도에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겠다.” 성전 건축을 마친 솔로몬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범죄로 인해 성전에서 회개하거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대하 6:12-42).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 하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약속하신다. 역대기는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공동체가 1차 독자다. 그들은 바벨론에 의해서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건축했다. 그런 점에서 역대기는 다시 건축된 두 번째 성전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 말씀의 의미를 담아 낸다. 이곳 성전에서 드리는 우리의 기도에, 특별히 회개 기도에 하나님께서 눈과 귀를 집중하실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2)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무엇을 약속하십니까?(17-18절) 솔로몬이 하나님의 율례와 법규를 지키면, 다윗과 언약한 대로 이스라엘의 왕위를 견고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과연 솔로몬의 행동에 따라서 왕위가 끊어졌는가에 대한 열왕기상 11장과 역대상 9장의 기록에 차이가 있다. 열왕기는 솔로몬이 율법을 잘 따르지 않고 많은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아 우상숭배를 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문제가 결국 나라가 나뉘는 이유가 되었다고 말한다(왕상 11:11). 그러나 역대기는 이런 내용을 생략한다. 이런 역대기의 생략은 무조건 솔로몬을 칭송하거나 흠 없게 만들려는 의도는 아니다. 오히려 역대기 저자의 신학적 고민이 담겨 있다. 역대기 저자는 열왕기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징벌이 후대에도 미친다’는 시각을 돌려서, 포로귀환 공동체에게 ‘하나님의 징벌은 당사자에게만 해당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노력한다. 역대기에 따르면 나라가 나뉜 것은 솔로몬 때문이 아니라 그의 아들 르호보암 때문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후대에까지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새롭게 시작하는 공동체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3) 솔로몬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는 무엇입니까?(19-22절)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이 그들을 약속의 땅에서 뽑아내시고 성전을 버리겠다고 경고하셨다. 하나님은 성전을 하늘에 있는 자신과 이 땅에 있는 사람을 잇는 하나의 매개체로 삼으셨다. 그런 점에서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는 곳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성전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하나님은 성전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이뤄지는 예배를 통한 만남과 삶의 변화를 약속하는 회개를 기뻐하신다. 나눔 2 성전은 회개하는 백성의 진심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은 죄 지은 백성을 징계하시더라도 그들이 성전에서 회개하면 용서하고 고쳐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 죄를 용서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을 서로 소개해 봅시다. 나눔 3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전이 아니라 성전에서 회개하는 백성입니다. 백성이 성전을 믿고, 말씀을 버리고 악한 길을 고집하면 하나님은 성전을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모신 성전인 나와 우리 교회가 회개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성전이 된 것에 만족하지 않고 성전다운 자질을 갖추도록 도와주소서. 공동체 _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함께 노래하며 기억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250921 속회지도자 자료 2025-09-17 신내교회 250921 속회지도자 자료.pdf 9월 세번째 주 그룹큐티나눔 모든 사람과 더불어 역대하 1:1-17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성도여 다 함께(찬송 29장, 구 29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기독교 신앙에는 개인적인 면이 강조됩니다.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로서 자기 삶을 결단해야 하고, 골방에서 하나님과 독대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마 6:6).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공적이고 공동체적인 면이 더 강합니다. 이스라엘과 교회 공동체에게 주어진 수많은 공적 규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19:19)는 가르침이 그 증거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모든 백성과 더불어 사는 신앙의 본을 보입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솔로몬왕이 기브온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1-6절). 1)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으로 갈 때 함께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2-3절) 온 이스라엘의 천부장들과 백부장들과 재판관들, 온 이스라엘의 방백들과 족장들, 곧 ‘온 회중’ 솔로몬은 회막이 있는 기브온 산당에 혼자 가지 않는다. 그는 천부장들, 백부장들과 같은 군인을 비롯하여 재판관들과 온 이스라엘의 방백들과 족장들과 함께 하나님의 회막을 향해 간다. 이러한 묘사는 병행되는 열왕기상 3:4과 비교해 볼 때 더욱 차이가 느껴진다. 하나님께 드리는 의미 있는 제사를 드림에 있어서 ‘혼자’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 함께하고 있음을 역대기는 주목한다. 2)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으로 간 이유는 무엇입니까?(3절) 하나님의 회막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 제사장 시절만 해도(삼상 1:3) 성막은 실로에 있었다. 하지만 사울왕 때 언약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긴 이후 성막의 행방은 묘연했다. 역대기는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으로 간 이유가 이곳에 성막, 즉 하나님의 회막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곳에서 솔로몬은 놋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려 한다. 비록 언약궤는 다윗성(예루살렘)에 있을지라도 제사를 드리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는 성막이었다. 특히 놋제단은 모세 당시에 브살렐이 만든 유서 깊은 것이다(출 38:1-7). 이 놋제단에서 천 마리의 제물을 제사 지내는 일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했을지 짐작하긴 어렵다. 역대기는 솔로몬과 온 이스라엘이 함께 유서 깊은 성막과 제단에서 하나님께 제사 지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나눔 1 역대기는 솔로몬이 드린 일천번제가 혼자 드린 제사가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드린 제사라는 점을 부각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각자 드리는 개인 예배도 중요하지만, 성도가 함께 드리는 공동체 예배도 중요합니다. 공동체 예배에서 누린 특별한 은혜를 나눠 봅시다. 2.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와 지식을 구합니다(7-17절). 1)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와 지식을 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10절) 하나님이 주신 백성 앞에서 출입하기(인도하기) 위해, 많은 백성을 재판하기 위해 솔로몬은 자신에게 맡겨진 수많은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께 지혜와 지식을 구한다. 재판을 공정하게 하려면 지혜와 지식이 필수적인 것은 당연하지만, 솔로몬이 가장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백성’이다. 앞서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막에 와서 제사 지낼 때부터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온 이스라엘이 그와 함께했다. 온 이스라엘은 솔로몬을 위한 들러리가 아니다. 오히려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솔로몬이 존재하는 듯하다. 2) 하나님은 솔로몬의 어떤 점을 칭찬하셨습니까?(11절) 부, 재물, 영광, 원수의 멸망, 장수 등 자기 이익을 구하지 않고 백성을 재판하는 데 필요한 지혜와 지식을 구한 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자신을 위한 이익을 구하지 않았던 점을 인상 깊게 여기셨다. 혹여 솔로몬이 자신을 위한 이익을 구했더라도 그 자체가 문제 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음가짐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신다. 솔로몬에게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더욱 생각하는 마음을 보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할 수 있는데도 구하지 않았던 것들까지도 주셨다. 3) 솔로몬이 통치하는 동안 예루살렘은 어떤 번영을 누립니까?(15절) 은금이 돌같이 흔하고, 백향목이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아졌다. 역대기는 곧바로 솔로몬이 얼마나 많은 병력과 번영을 누렸는지를 소개해 준다. 이런 배열이 열왕기와는 다르다는 점에는 역대기 저자의 의도가 담겨 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구하지 않았던 부와 재물 그리고 영광을 이 단락에서 보여 준다. 돌같이 흔한 은과 금, 널려 있는 뽕나무 같은 귀한 백향목의 존재는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솔로몬에게 하신 약속의 결과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백성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을 보셨다. 따라서 그에게 더 많은 것을 줄 때 그가 자신을 위해서만 쓰지 않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사용할 사람이라 여기셨을 것이다. 따라서 군대의 위용과 막대한 재물은 단지 솔로몬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마음가짐이 올곧은 사람이 받은 하나님의 복은 모든 사람을 위한 복이 된다. 나눔 2 솔로몬은 자신만을 위해 부와 명예를 구할 수도 있었지만, 모든 사람을 위해 지혜와 지식을 간구했습니다. 자기만족보다 타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그의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셨습니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나눔 3 수많은 병거와 마병, 은금과 백향목, 말들은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주신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는 솔로몬이 누린 부귀영화이면서, 모든 사람에게 미친 안전과 풍요입니다. 타인의 유익을 구했을 때 하나님이 내 필요까지 채우신 경험, 혹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주변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신 경험을 나눠 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나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미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공동체 _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몇 사람의 예배가 아닌 모두의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250914 속회지도자 자료 2025-09-04 신내교회 250914 속회지도자 자료.pdf 9월 두번째 주 그룹큐티나눔 말씀대로 살다가 낙심될 때 데살로니가후서 3:1-18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인내하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찬송 367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교회 안팎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바울이 악인들의 부당한 공격을 받았다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주님의 재림을 핑계로 게으르고 무절제하게 사는 구성원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은 복음 전파와 선한 삶을 포기할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저력은 어려움을 이겨 내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지속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그들을 향한 확신과 바람을 고백합니다(1-5절). 1) 바울은 자신과 일행이 어떤 사람들에게서 벗어나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까?(2절)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 바울이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로 지칭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이전에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 무리를 선동해서 복음을 못 전하도록 했던 유대인들(행 17:5)을 염두에 둔 것 같다. 꼭 유대인이어서 문제가 된 것이 아니다. 복음 전하는 일을 훼방하는 이들에게서 벗어나길 바라는 전도자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2) 바울은 주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마음을 어디로 인도하기를 바랍니까?(5절)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닮고, 예수님의 인내를 닮기 바란다. 사랑과 인내는 매우 추상적이지만 이어지는 6-15절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가 선명해진다. 나눔 1 말씀을 따라 사는 삶에 항상 좋은 일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을 만나거나 고통스러운 현실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사랑과 인내로 고난의 시간을 이겨 낸 적이 있다면 서로 나눠 봅시다. 2.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있는 ‘게으름’의 문제를 다룹니다(6-18절). 1) 바울은 게으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라고 권합니까? (6, 14-15절) ① 6, 14절: “멀리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② 15절: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같이 권면하라.” 게으른 사람들에 대한 바울의 권고 사항은 섬세하다. 그리스도인으로 마땅하지 않게 행동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멀리하라고 명령한다. 그런 사람과는 관계를 맺지 말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게으른 사람을 원수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바울의 의도는 게으른 형제가 스스로 부끄럼을 느끼고 그런 습관을 버리도록 주변에 있는 이들이 신경을 쓰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바울의 권고 사항은 매우 까다롭다. 이런 형제를 돕는다는 것은 보통의 사랑과 인내심으로는 하기 어렵다. 어쩌면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를 닮으라던 말은 이곳에서 빛을 발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한 죄는 싫어하시되 우리를 미워하신 것이 아닌 것처럼, 게으른 형제를 대하는 우리는 그의 잘못된 습관은 싫어하되 사람 자체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비록 우리의 권면을 잘 따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시되 인내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람을 바르게 세우는 어려움을 이겨 내는 인내심과 좀처럼 변하지 않는 사람을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여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2)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바울은 본을 보이기 위해 어떻게 행동했습니까?(8절)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으로써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 했다. 바울은 스스로 일하여 생계를 꾸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아마 데살로니가에 있는 게으른 습관을 지닌 이들이 큰 문젯거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본을 보여야 했고, 바울 스스로가 모델이 되기로 했다. 3) 바울이 ‘도무지 일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에게 주는 권면은 무엇입니까?(12절)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바울은 누구도 형제 사랑을 악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바울도 스스로 일을 하여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 했다. 과연 바울을 사랑하고 돕는 사람이 없었을까? 아니다. 바울을 돕는 다른 교회와 동역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폐가 되지는 않기를 바랐다. 따라서 스스로 일을 하여 자기 양식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이것은 신앙의 문제가 아닌 사람됨의 문제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점에서 건강하고 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4) 말씀대로 살지 않는 이들 때문에 속상한 이들에게 주는 권면은 무엇입니까?(13절)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선량한 그리스도인일수록 곤란한 사람을 도우려 노력한다. 선을 행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우 고귀한 행동이다. 그러나 정작 도움을 받는 이의 자세와 태도가 좋지 않을 때 도움을 주려던 사람이 역으로 곤경을 느끼게 된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런 이들을 향해 바울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산다고 하여 모든 일이 좋지만은 않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전도자로서 바울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지만 수없는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실망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를 더욱 깊이 생각하자. 나눔 2 교회 안의 누군가가 말씀에 불순종하고 공동체에 폐를 끼치면 실망하여 맥이 풀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순종의 삶을 멈추거나 형제자매를 포기하지 말고, 필요하다면 공동체가 징계해서라도 불순종하는 지체의 회개와 회복을 도와야 합니다. 낙심할 뻔했으나 잠시 숨을 고르고 믿음의 경주를 이어 간 일이 있다면 나눠 봅시다. 나눔 3 바울은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교인들을 교훈하려 했습니다. 이 역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음’의 예입니다. 바울의 본을 따라 고쳐야겠다고 생각한 점이 있다면 나눠 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말씀대로 살다가 넘어진다 해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옵소서. 공동체 _ 공동체 안에 있는 이들이 누군가를 걸려 넘어뜨리는 돌부리가 아닌, 디딤돌이 되게 하옵소서. 250907 속회지도자 자료 2025-09-03 신내교회 250907 속회지도자 자료.pdf 9월 첫번째 주 그룹큐티나눔 지금처럼 바람직하게! 데살로니가전서 4:1-12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주와 같이 되기를(찬송 454장, 구 508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바퀴가 멈추면 자전거는 옆으로 넘어집니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계속 달려야 합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이 수준이면 만족할 만하지’라는 생각으로 성장을 멈추고 실천을 그친다면, 우리 신앙은 제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비틀거리거나 퇴보합니다. 말씀의 교훈을 통해 우리 신앙의 거룩함, 사랑, 품위가 한 단계 성장했을 때 안주하거나 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적당히 만족하지 말고, 거룩한 허기를 느끼고 더욱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도 흔들림 없이 성숙합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바울은 자신에게서 배운 대로 살 것을 권면합니다(1-2절). 1)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에게 배운 것은 무엇입니까?(1절)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데살로니가전서는 이렇게 언급한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고(1:9),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기다리고 있다(1:10). 이처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주 안에 굳게 서 있다”(3:8).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의 기본 자세다. 그렇다고 하여 윤리적인 가르침이 없지 않다. 바울은 다른 서신들에서 교리적인 가르침만큼 윤리적인 삶의 자세를 강조했고, 데살로니가전서에서도 이런 가르침은 이어진다. 2)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배운 것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합니까?(1절) 행하고 있는 일을 더욱 많이 힘써 나가야 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배운 것을 지금까지 잘 행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런 삶의 자세는 계속 이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더 깊고, 더 넓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한 것으로 만족하고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이 없어질 수도 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더욱 많이 살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을 향한 사명에 가깝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명령이다. 나눔 1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하는’(9-10절) 교회였습니다. 바울도 이를 인정하며 더욱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지속하고 강화해야 할 하나님이 기뻐하실 운동,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2.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3-12절). 1)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3, 7절) 너희(그리스도인)의 거룩함 바울은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으로 연결한다. 거룩함을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바울은 ‘음란을 버리는 일’과 관련된 것으로 말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음란’은 분명히 도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문제지만 당시 로마 사회에서는 달랐다. 2세기 로마 시민이자 그리스도인은 아니었던 디오그네투스는 당시의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남들과 똑같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만, 아이를 버리지는 않는다. 서로 식탁은 공유하지만 잠자리는 공유하지 않는다.” 그의 말에는 일반적인 로마 사회의 성문화와 그리스도인의 삶이 다르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이런 맥락에서 바울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음란을 버릴 것’을 말하고, 그리스도인 남편을 향하여 ‘아내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하라’는 명령은 당대의 문화에서 생각하면 일반적인 생각은 아니다. 어쩌면 바울이 명령한 구체적인 사례들은 세상과는 분명히 다른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을 만들었다. 2) 바울은 거룩함을 위해 무엇을 버리고 누구처럼 되지 말라고 권면합니까?(3, 5절) 음란을 버리고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라고 했다. 바울은 여기에서 ‘이방인’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 사용한다. 데살로니가 교인들 대부분이 혈통적으로 이방인 출신이 많았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자신의 욕망에 따라서 살아가듯이,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분명한 가르침이다. 3) 단정한(품위 있는) 삶을 위해 바울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11절)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는 것이다. 바울이 단정한(품위 있는) 삶을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단순하고 당연하다. ‘조용히 자기 일을 하라’는 말은 지나친 열심에 대하여 경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누군가를 선동하는 교회 안의 분란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는 말은 형제 사랑을 악용하려는 게으른 사람을 향한 단호하고 분명한 명령이다. 그런데 이런 바울의 명령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명령이 아닌, 좀 더 일반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라는 명령에 가깝다.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받는 정도의 상식과 의식을 가진 그리스도인을 누가 이방인과 구별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을 누가 성실한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을 누가 선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성숙한 사람됨에서 더욱 구별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보이기 마련이다. 나눔 2 거룩함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본질이며 우선되는 덕목입니다. 거룩함은 곧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내 삶에서 혹은 우리 교회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세상과 다른’ 모습은 무엇입니까? 또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거룩함은 무엇입니까? 나눔 3 그리스도인은 교회 밖 사람들 앞에서 품위 있게(단정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품위는 허례허식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는 상식적인 삶,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배려입니다. 우리는 어떤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되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을 드러내길 원합니다. 공동체 _ 우리 공동체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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