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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첫째 주 그룹큐티나눔
안식 후 첫날 제자들이 찾는 것
요한복음 20:1-18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예수 부활했으니(찬송 164장, 구 154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제자들이 안식 후 첫날 아침부터 찾고 있는 것은 부활의 주님이 아니라 차가운 주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부활하셨지만, 제자들은 빈 무덤 앞에서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갔을까?’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넋이 나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죽음의 절망에 빠진 제자들에게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안식 후 첫날, 제자들은 ‘빈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찾습니다(1-10절).
1)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이 빈 것을 알고 어떻게 행동합니까?(1-2절)
제자들에게 가서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보고하면서,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간 것 같다고 말했다.
안식 후 첫날 예수의 무덤에 간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 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마리아가 ‘시몬 베드로’와 ‘사도 요한’(‘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빈 무덤 사실을 보고할 때 ‘우리’라는 복수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무덤에 간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와 더불어 여러 여인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공관복음에서는 모두 막달라 마리아를 포함한 다른 여인들이 함께했음을 보고한다(마 28:1; 막 16:2; 눅 24:1, 10). 즉 예수의 빈 무덤을 목격한 여인은 막달라 마리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었다. 여인들에게 아직 예수 부활에 대한 의식은 없었지만, 그들이 분명하게 보고 증언하는 바는 바로 ‘빈 무덤’이다.
2) 마리아의 말을 듣고 무덤에 간 제자들이 재차 확인한 것은 무엇입니까?(3-7절)
무덤이 비어 있다는 사실
베드로와 ‘다른 제자’(사도 요한)가 여인들의 말을 듣고 즉각 예수의 무덤으로 달려갔다. 사도 요한이 베드로보다 젊었기에 좀 더 빨리 뛰어 무덤에 도착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무덤 밖에서 안을 확인할 뿐 무덤 안으로는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주저하지 않고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신은 없었고,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더 특이한 점은 예수의 얼굴을 감쌌던 수건(수다리온)이 시신 머리 부분에 따로 가지런히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예수의 몸을 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이 그대로 있는 채 예수님의 몸만 빠져나간 것을 보여 준다.
3) 제자들이 ‘빈 무덤’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 것은 무엇입니까?(9절)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리라는 성경 말씀
베드로와 사도 요한 모두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예언한 구약의 말씀은 깨닫지 못했다(참조. 시 16:10; 호 6:2).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가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초대 그리스도인이 실제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이후다(요 2:22; 눅 24:45-46). 빈 무덤은 부활의 분명한 증거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제로 부활하신 주님이 직접 제자들과 만나 인격적으로 말씀을 나누며 자신을 보여 주는 일이 남아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직접 심방하신다(요 20:19).
나눔 1 ‘빈 무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명확한 증거임에도 제자들은 그 빈 무덤에서 다시 예수님의 시신을 찾으려 했습니다. 혹시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여전히 무덤에서 찾으려는 건 아닙니까? 여전히 ‘죽음의 굴레’에 갇힌 채 낙망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서로 나눠 봅시다.
2.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11-18절).
1) ‘빈 무덤’을 보며 마리아가 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13절)
예수님의 시신이 도둑맞았다는 생각에 탄식했다.
마리아는 여전히 ‘빈 무덤’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예수님의 시신 ‘절도’로만 이해하려 한다. ‘빈 무덤’이 ‘예수의 부활’의 증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믿음이 아직 부족했던 거다. 여인은 단지 눈에 보이는 현상만 볼 뿐, ‘빈 무덤’의 의미를 예수님의 생전 말씀과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참조. 마 16:21; 17:22-23; 20:17-19). 빈 무덤은 예수 부활의 명확한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믿음이 부족하여 예수 시신을 지키지 못한 것만 자책하며 탄식하고 있다.
2)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인 줄 모르고 부탁한 것은 무엇입니까?(14-15절)
“예수님의 시신을 혹시 당신이 옮겼다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십시오.”
끝까지 여인이 관심을 두는 건 예수님의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다. 심지어 살아계신 예수님께 ‘예수의 시신’을 어디에 두었는지 알려 달라고 요청한다. 기막힌 역설이다. 여인이 이렇게 하는 건 예수에 대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여인이 지극히 예수를 사랑하며 따랐기에 예수의 죽음에 예를 표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다. 온전한 믿음은 예수의 죽음에 예를 표하는 게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3) 마리아는 방금 대화한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어떻게 행동합니까?(16-18절)
즉시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알렸다.
예수님은 자기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여전히 예수의 시신을 찾는 마리아의 우둔함을 책망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따뜻하게 ‘마리아야’라고 이름을 불러 주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기 부활의 모습을 마리아에게 보여 주시고 이 사실(예수 부활)을 형제들(제자들)에게 가서 증언하라고 말씀하신다. 마리아는 이 예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며 제자들에게 가서 ‘살아나신 주님을 보았다’고 증언한다. 신앙생활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그 주님을 증언하는 삶이다.
나눔 2 마리아는 무덤만 바라보며 주님의 부재를 한탄하다가, 부활하셔서 자기 등 뒤에 계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삶에서 ‘정말 주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하고 강렬한 주님의 임재를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나눔 3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달려가 “내가 주를 보았다”고 외친 것처럼, 내가 이 기쁜 부활의 소식을 전해 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 구체적인 실천 한 가지를 정해 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무덤(죽음, 삶의 문제)에서 시선을 돌려 부활하신 주님을 보게 하소서.
공동체 _ 교회가 부활의 증인이 되어 생명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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