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 자료

6월 네번째 주 그룹큐티나눔
부활의 열매
고린도전서 15:20-34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나의 영원하신 기업(찬송 435장, 구 492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세상은 우리에게 “인생은 한 번뿐이니 후회 없이 즐겨라” 하고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남들 다 즐기는 것을 참으며 굳이 손해 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만약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면, 우리가 주님을 위해 흘린 눈물과 이름 없는 헌신은 그저 헛된 낭비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과 최후 심판이 있기에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결말’은 우리 ‘현재’를 전혀 다르게 규정합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부활하신 예수님이 고난받는 성도에게 새 소망을 주십니다(20-28절).
1)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잠자는 자들’에게 어떤 존재가 되셨습니까?(20절)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기독교는 예수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실 위에 세워졌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초대 공동체의 신념과 결단으로 발생한 사상에 불과하다면 바울의 말대로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은 헛될 뿐이다(15:14, 17). 하지만 바울 사도는 분명하게 예수가 역사적으로 부활하였음을 확증하여 선포한다(15:1-8, 20). 예수께서 역사적으로 부활하시고 모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여기 ‘잠자는 자들’은 아담의 타락 이후로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에 놓인 자들이다. 하지만 예수의 부활 사건으로 ‘잠자는 자들’이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나라로 옮겨질 수 있게 되었다.
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21-22절)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것’(부활할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인류가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죽음의 권세 아래 있을지라도 예수를 믿는 자들은 이미 예수 부활에 동참하여 영생의 맛을 조금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 장차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이들은 예수의 ‘영광의 몸’의 형체처럼 온전한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이다(빌 3:21). 중요한 건 현재 예수를 믿고 부활에 동참한 자가 미래 예수의 재림 때에도 부활의 몸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첫 사람 아담의 죄로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렀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를 통해 영생이 주어졌다.
3) 맨 나중에 멸망 받을 궁극적인 원수는 무엇입니까? (26절)
사망
바울은 ‘사망’을 인격화하여 예수가 물리쳐야 할 ‘최후의 원수’로 규정한다. 예수 부활의 목적이 사탄의 최종 병기 ‘사망의 권세’를 깨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세상은 생명과 안식의 나라였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빠져 죄를 지은 결과 이 땅은 죄와 사망의 나라로 전락했다.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가 사탄의 권세가 왕 노릇하는 비정상적인 세상으로 변질된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이유는 바로 이 비뚤어지고 왜곡된 세상을 생명과 안식의 나라로 정상 회복하기 위해서다.
나눔 1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그분을 믿는 우리도 반드시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부활하게 된다는 보증입니다. 부활 소망이 현재 내 삶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나눠 봅시다.
2.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선한 일을 위해 고난받을 이유가 없습니다(29-34절).
1) 부활 소망을 품은 바울이 매일 다지는 삶의 각오는 무엇입니까?(31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한다. 이는 바울이 날마다 사선을 넘나드는 듯한 위험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다는 걸 말한다. 바울의 이 선언은 그의 사역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사역인지를 방증한다. 바울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했음을 간증하고 있다. 바울은 날마다 순교의 각오를 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역했다. 바울에게 부활 신앙이 없었다면 결코 이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삶의 동력은 바로 부활 신앙이다.
2)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살겠다고 말합니까? (32절)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면서 현재의 안락과 쾌락을 추구하겠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고 한다(32a절). 이 맹수가 진짜 원형 경기장의 맹수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바울은 기독교인을 박해하며 핍박한 적대자들을 가리켜 맹수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어쨌든 바울은 에베소에서 거의 죽음에 이르는 극심한 환난을 겪었다. 그런데 바울이 반문한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나의 이런 고생이 무슨 의미가 있나?” “만일 부활이 없다면 차라리 오늘 먹고 마시고 편하게 사는 게 더 낫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바울은 부활 소망이 있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역했다.
3) 부활을 기다리는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33-34절)
부활을 부정하며 선한 행실을 더럽히는 ‘악한 동무들’에게 속지 말고,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
바울은 ‘악한 동무들이 선한 행실을 타락시킨다’라는 메난더(Menander)의 희극 타이스(Thais)의 격언을 인용하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속지 말라고 권면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적으로 이미 부활하여 구원의 완성을 누린다’고 말하면서 정작 미래의 부활은 부인하는 자들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헛된 신앙을 가진 자들을 경계하며 오직 바른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권면한다.
나눔 2 부활이 없다면 오늘을 즐기는 삶이 최선이지만, 부활이 있기에 세상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부활 소망 때문에 견뎌야 할 고난은 무엇입니까?
나눔 3 나의 신앙을 무디게 하고 죄로 유혹하는 ‘악한 동무’는 무엇입니까? 장차 부활하여 주님을 대면할 자로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내가 멀리해야 할 나쁜 습관이나 가까이해야 할 거룩한 습관은 무엇입니까?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부활의 소망을 갖고 죄의 유혹을 담대히 이기게 하소서.
공동체 _ 세상의 죄와 사망의 문화에 물들지 않고 선한 일을 추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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