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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두번째 주 그룹큐티나눔
사람을 향하신 주님
시편 8:1-9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찬송 79장, 구 40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 봅시다.
웅장한 산맥과 광활한 평원,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 앞에서 우리는 종종 대자연의 장엄함에 압도당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토록 경이로운 우주 만물조차 하나님의 손끝에서 빚어진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저 광활한 우주와 창조주이신 당신 사이에 ‘인간’을 세워 두셨습니다. 시편 8편의 시인은 인간이 자연보다 존귀하며, ‘하나님보다 조금 못할 뿐’이라고 벅차게 노래합니다. 흙으로 지어진 유한한 우리가 어찌 창조주보다 단지 ‘조금’ 못한 존재일 수 있겠습니까? 시인이 진정 말하려 한 본질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시선이 그토록 특별하고 위대하다는 사실입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하나님의 영광은 하늘을 뛰어넘습니다(1-3절).
1) 시인은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을 덮었다고 말합니까?(1절)
하늘
현대인이 성경을 읽을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은 성경이 고대인의 언어와 세계관을 통해 기록되었다는 사실이다. 시편을 묵상할 때도 당대 세속적 가치관에 대항하는 시인의 신앙적 시선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대인들에게 ‘하늘’은 단순히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늘의 해와 달, 별 자체를 신(神)으로 숭배했으며, 그곳을 수많은 신이 거주하며 세상을 움직이는 신성한 처소로 여겼다. 이러한 다신론적이고 범신론적인 배경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위엄이 하늘을 덮었다”고 선포한다. 이는 이방인들이 신성시하던 하늘조차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음을 선언하는 파격적인 신앙 고백이다. 이처럼 시인은 당대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맞서며, 온 우주의 진정한 통치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2) 하나님은 대적들을 잠잠하게 하기 위해 누구의 입을 통해 권능을 세우십니까?(2절)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
고대 사회에서 신의 대리자는 항상 왕이나 제사장처럼 높은 계급과 강력한 힘을 가진 인물이었다. 신의 위엄을 드높일 자격이 있는 존재는 응당 사회적 정점에 있는 권력자일 때 신의 위엄이 더 높아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세상의 가치관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하나님은 화려한 권력을 쥔 이들이 아니라, 당시 가치관으로는 가장 힘없고 미약한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을 통해 자신의 권능을 세우시는 분이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의 지위나 물리적인 힘에 기대지 않음을 보여 주는 파격적인 선포다. 세속적인 힘의 논리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 사이에는 이처럼 거대한 간격이 존재한다. 가장 천하게 여겨지던 자의 입술을 통해 대적들의 기세를 꺾으시는 하나님의 방식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진정한 권위다.
나눔 1 우리를 짓누르는 커다란 문제들도 광활한 밤하늘의 별들을 손가락으로 만드신 하나님께는 티끌 같을 뿐입니다. 요즘 나를 막막하게 만드는 걱정거리가 있습니까? 우주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크심을 묵상할 때, 그 문제가 어떻게 새롭게 해석되는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2. 하나님은 사람을 존귀하게 대하십니다(4-9절).
1) 시인은 인간을 어떤 말로 표현하며,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어떻게 대하십니까?(4절)
시인이 ‘사람’과 ‘인자’라고 표현한 인간을 하나님은 생각하고 돌보신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창조 신화인 <에누마 엘리쉬>나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에 익숙했던 이들에게 자연은 그 자체로 신성한 존재였다. 신의 사체를 쪼개 세상을 만들었다는 신화적 관념은 자연 속에 신의 속성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 안에서 인간은 만물보다 아래에 있는 비천한 존재이자 신들을 시중드는 도구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인의 선포는 당대의 가치관을 정면으로 뒤집는 가히 혁명적인 고백이다. 광활한 우주에 비해 인간이 비록 보잘것없는 ‘에노쉬’(사람)와 ‘벤 아담’(사람의 아들)에 불과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우주 만물보다 귀하게 여기시며 직접 생각하고 돌보신다.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만물을 다스리는 영광의 관을 씌우셨다는 시인의 노래는, 인간의 위상을 만물 위에 두시는 하나님의 파격적인 사랑을 고대 세계관의 어둠 속에서 찬란하게 드러낸다.
2) 하나님이 사람을 높이신 지위와 그에게 맡기신 것은 무엇입니까?(5-8절)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 또한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만물)을 다스리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당신의 손으로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한을 맡기셨다는 시인의 선포는 고대 세계의 종교적 근간을 뒤흔드는 놀라운 선언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해와 달, 별을 비롯한 대자연은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인 ‘신성한 실체’였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자연을 숭배의 자리가 아닌 인간의 다스림을 받는 자리로 옮겨 놓음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뒤바꾼다.
3) 이 시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공통된 고백은 무엇입니까?(1, 9절)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인은 시의 처음과 끝을 동일한 찬양으로 장식하는 ‘수미상관’ 방식을 통해, 온 땅에 가득한 여호와의 이름이 지닌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고대 세계의 사람들은 자연을 무수한 신들의 각축장으로 인식했다. 그들에게 신은 변덕스럽고 폭력적인 존재였기에, 인간은 신들의 진노를 달래기 위해 끊임없이 제사를 바쳐야 하는 나약하고 피동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인이 노래하는 하나님의 통치는 이러한 비극적 세계관을 완전히 뒤바꾼다. 하나님은 인간을 억압하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영광을 부여하시며 온 세상을 당신의 자비와 위엄으로 채우시는 분이다. 시인은 이 고백을 시의 입구와 출구에 배치함으로써, 신앙의 여정은 결국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발견하는 데서 출발하여 그분의 위대함을 확증하는 찬양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아름답게 보여 준다.
나눔 2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질 때, ‘하나님이 나를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던 적은 언제입니까? 나의 가치를 세상의 평가가 아닌 하나님의 시선에서 찾기로 결심한 지점이 있다면 나눠 봅시다.
나눔 3 우리가 머무는 곳을 선하게 가꿀 때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집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작은 세상(가정, 일터, 소그룹)은 어디입니까? 그곳에서 하나님의 따뜻함과 공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 이번 주 내가 책임감을 가지고 실천할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입니까?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광활한 세상에서 먼지 같은 저를 기억하고 돌보시는 주님의 은혜를 오늘도 찬양합니다.
공동체 _ 우리에게 맡겨 주신 세상과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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