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 자료
5월 둘째 주 그룹큐티나눔
불의가 정의를 삼키더라도
시편 119:97-112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너 근심 걱정 말아라(찬송 382장, 구 432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마치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희망도 전혀 보이지 않는 암흑과 같은 순간 말입니다. 시편 119편의 시인도 그런 때를 알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그는 짙은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합니다. 그는 빛을 깨닫는 이 명철함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백합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명철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97-104절).
1) 시인은 자신의 명철함이 누구보다 낫다고 여깁니까(99, 100절)?
시인의 모든 스승, 노인
시인이 살던 당시에는 스승이나 노인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겼다. 그렇다면 시인은 지혜로운 사람보다 자신이 더 뛰어난 명철을 지녔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 말씀의 뛰어남을 보여주려는 시인의 의도가 있을 뿐 그가 오만방자한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명철이란 바른 행위와 악한 행위를 구분하는 것이다.
2) 시인이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게 된 까닭은 무엇입니까(101, 104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시인이 명철하게 되어서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다 보니 악한 길로 가지 않게 되었다고 여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면 응당 악한 길로 향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수록 가지 말아야 할 길(삶의 행동들)이 더욱 분명해진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과 우상을 숭배하는 길을 구분하여 보여준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은 이웃을 사랑하는 길,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향해 긍휼의 마음을 품는 길과 연결되지만, 우상을 숭배하는 길은 자신을 사랑하는 길,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폭행하는 길과 연결된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이며, 이 세상에서 정의가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 이해되었다. 이렇듯 내면화한 말씀은 나침반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어느 길이 하나님을 향한 길인지, 악한 길인지 알려준다.
나눔 1 시인은 하나님 말씀으로 인하여 명철해졌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명철은 성공하고 부유하게 되는 것과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모든 악한 길, 모든 거짓 행위를 싫어하고 거부할 수 있는 올곧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심어준 명철함은 무엇입니까?
2. 시인은 어두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만이 길을 비추는 빛임을 노래합니다(105-112절).
1)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엇으로 비유합니까(105절)?
등, 빛
빛은 어둠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시인은 어두운 밤길에 등불을 켜서 길을 환하게 밝히고서야 길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두운 곳을 환히 비춰주는 빛, 등불에 비유한다.
2)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려는 시인은 지금 어떤 상황 가운데 있습니까(107, 109절)?
고난, 위기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등불과 빛에 비유한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이다. 시인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이 매우 심하다고 토로하고, 생명이 항상 위기 속에 있다고 여긴다. 물론 우리는 시인이 처한 고난과 위기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로 읽어내기 쉽다. 시인이 가야 하는 길에는 악인들이 쳐놓은 올무가 있다. 그러나 그 올무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살얼음을 걷는 심정으로 한 발 한 발 내디딜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올무에 걸릴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살아간다. 불의가 정의를 삼키는 세상 속을 살아가는 고통이 있다. 그래서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빛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발 앞을 비춰주는 등불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등불이 있어야 올무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3) 시인은 주의 증거들로 무엇을 삼습니까(111절)?
▶자신의 기업(유산)
‘증거’로 번역된 이 단어(히. 에두트)는 명령으로 내린 법(법령, 법률)을 의미한다. 구약에서 이 단어가 주로 사용된 것은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두 돌판(증거판), 그 돌판을 넣은 언약궤(증거궤) 그리고 그 언약궤가 놓인 성막(증거의 장막)이라는 표현들이다. 따라서 증거라는 말을 십계명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증거로서 십계명과 같은 법을 자신의 기업, 즉 유산으로 여기겠다고 다짐한다. 기업이라는 단어(히. 나할)는 소유를 분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에서 주로 땅을 나눠주는 것과 연결되었다. 그런데 시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자신의 소유로 여기겠다고 말한다. 불의가 정의를 삼키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다는 것은 고난과 위기를 자초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다르게 생각한다. 오히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때 비로소 고난과 위기가 더 멀어질 것이라고 여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쓸모없다고 여기는 이가 있다면 시인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어보자. 불의가 정의를 삼킨다면 지금 당장은 세상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나 정의 곧 빛 되신 말씀은 그 속에서 빛을 내 불의를 태워버릴 것이다.
나눔 2 시인은 하나님 말씀을 빛을 밝히는 등불로 비유합니다. 이 빛은 짙은 어둠 속에서도 무엇이 불의인지를 보여줍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준, 내게 빛과 같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나눔 3 시인은 악인들이 쳐놓은 덫 앞에 있습니다. 자칫하면 깊은 구렁 속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시인은 감춰진 구렁을 환하게 보여줄 말씀에 의존할 뿐입니다. 그것이 가장 현명한 자세입니다. 고난과 위기에서 나를 건져준 말씀은 무엇입니까?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하나님 말씀으로 내가 걸어야 하는 길을 더 환하게, 더 분명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공동체 _ 절망의 구렁에 빠진 이들에게 말씀의 빛이 닿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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